투키디데스의 함정.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설명하면서 소개한 개념이다. 고대 도시 국가 스파르타는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를 장악하고 100여 년 동안 패권을 유지했다. 페르시아 전쟁 승리 후 델로스 동맹을 주도하며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아테네가 해상권을 거머쥐자 패권국가로서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스파르타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던 스파르타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전후 아테네는 물론 국력을 소진한 스파르타 역시 몰락하고 만다. 신흥강국이 아닌 패권국의 불안이 세기의 전쟁을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레이건,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 특별보좌관, 국방부 차관보 등을 역임하며 직접 정책에 관여했던 그레이엄 교수는 투키디데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거 500년 동안 벌어졌던 16개 전쟁을 분석했다. 신흥강국이 출연하면서 기존 패권국과 경쟁 과정에서 벌어졌던 전쟁을 다루었는데 4번의 ‘전쟁 회피’ 사례가 주목된다. 기존 패권국이 패권 유지를 위해 방어전을 벌이는 경우가 12번으로 압도적이었는데,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은 경우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교수는 ‘전쟁 회피’ 사례를 통해 12가지의 열쇠를 제시한다.

5세기 말 포르투갈 대 에스파냐, 20세기 초 영국 대 미국, 1940년부터 시작된 냉전기 미국과 소련, 199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영국, 프랑스 대 독일 사례가 ‘전쟁 회피’에 해당한다. 이 네 사례 중 미・소 냉전기나 탈냉전기 영국, 프랑스 대 독일의 경쟁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조건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다름 아닌 핵무기로 인한 공포의 균형이다. 핵보유국 중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파괴하겠다는 결정은 스스로 자멸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면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소련에 이어 1964년과 1967년 우라늄과 수소를 이용한 핵실험을 강행했고 현재 5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핵확산금지협약(NPT) 가입국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중국이 주요 핵보유국이다. 이외에 1974년 인도, 19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행했고 핵실험과 무관하게 이스라엘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여겨진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도 핵무기 보유국에 포함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북한을 9번째 핵보유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과거 소련이 미국과 핵균형을 유지했지만 경제력 하락으로 패권 경쟁에서 물러난 것과 달리 중국은 경제력에 있어서도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레이엄 교수에 따르면 핵무기로 인한 상호확증파괴(MAD) 이외의 12번째 열쇠는 ‘국내 상황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경제가 튼튼하고 유능한 정부가 국민들과 단합하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핵보유국과의 동맹, 경제적 상호 의존, 문화적 공통성 등의 열쇠보다 새로운 해법으로 읽힌다. 국가를 기초 행위자로 규정하는 국제정치 분석에서 국내 요인을 변수화하면 방정식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특히 자유주의 국가의 정권교체 경우가 그렇다. 시진핑 집권 이후 아시아재균형전략(Rebalancing Toward Asia)을 펼치면서 패권 경쟁을 본격화한 미국은 이미 두 번 정권교체가 됐고 현재 트럼프 2기를 앞두고 있다.

중국은 대만 해협을 포함해서 남중국해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움직임을 1970년대부터 보여왔다. 최근에는 북쪽 파라셀 군도(群島)는 물론 남쪽의 스프랠리 군도의 수비-피어리크로스-미스치프 암초를 이용하여 경납고, 레이더 기지, 항만, 방공시설 등을 갖춘 대규모 군사시설을 구축했다. 중국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인정하지 않았던 해안경계선인 ‘9단선’ 대신 오히려 대만을 포함한 ‘10단선’을 발표해 국제기구를 무력화하려는 행보 중이다. 일본과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를 놓고 다투고 있다. 중화 부흥을 전면에 내세우는 중국의 부상 앞에 기후변화와 공급망, 첨단기술을 놓고 협력을 논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이 무색해 보인다.

중국의 군 장성들 중에는 마오쩌둥이 피력했던 “핵전쟁에서 3억 명의 인민이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중국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공포의 균형을 우습게 여기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레이엄 교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주권자에게 있다. 중국의 엘리트 당원들이 그 3억 명의 운명을 결정하게 할지는 중국 인민이 결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중국의 개혁개방은 경제 영역에만 한정됐다.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12번째 열쇠가 필요해 보인다. 무서운 정부가 아닌 ‘유능한 정부’와 인민의 단합이 전쟁을 부르지 않는 길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한국을 향해 무비자 방문을 허용했다. ‘K붐’을 타고 우리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민주주의가 중국으로 향하면 좋겠다.

윤은주/ 북한학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

*이 칼럼은 <기독공도>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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