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 씨가 운영하는 펜션(강원도 고성)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그는 편안한 농부 패션에 슬리퍼를 즐겨 신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이었다. ⓒ할렐루야교회 김재욱

우리가 만약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강원도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말동무가 됐다거나, 같은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동기였다면? 혹은 시간을 거슬러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더 빨리, 스스럼없이 친구가 됐을지도 모른다. 선교팀과 호스트라는 역할이 유일한 장벽으로 느껴졌던 동갑내기 친구. (하지만 빠른 년생이므로 오빠로 모시기로 한다)

사실 그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꽃제비 출신의 크리스천, 탈북민 청년 사업가로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는 그렇게 화려한 사람이 아니었다. 

편안한 농부 패션에 슬리퍼를 즐겨 신는 선한 얼굴의 청년.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쓰레기통을 비우고, 사람들이 먹을 간식을 부엌에서 홀로 준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탈북민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알고 싶었다. 친구가 되는 데에 출신이나 직업은 그다지 필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3시간쯤 떨어진 강원도 고성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새하얀 민박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가 쏟아졌다.

▲ 강민 씨는 꽃제비 출신의 크리스천, 탈북민 청년 사업가로 언론과 방송의 주목을 받았다. (채널A - ‘이제 만나러 갑니다’ 영상 갈무리)

진짜 백성이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 강민

함경북도 북청 출신, 87년생인 그의 이름은 ‘강민’이다. 마치 인터넷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 뜻을 물어보니 백성 민(民)이라고 한다. 또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근(根)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왕도 아닌 백성이 되라는 뜻이 불만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이름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진짜 백성이 된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을 물어보니 조용하지만 고집 있는 아이였다고 한다. 둥근 과자와 네모난 과자 중에 둥근 과자만 먹겠다고 떼를 쓴다거나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 도망치기도 했다고. 지금은 가족이 없는 그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을까?

“어릴 적에 저는 새 아빠, 친 아빠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 못 했어요. 다섯 살 때 새로운 아빠랑 엄마가 너무 무섭게 싸우고 있는 걸 봤어요. 부엌문 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약간 당황하기도 했고 부모님이 이런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 걸 어렴풋이 알아서 문을 닫고 나왔어요. 여섯, 일곱 살이 되면서 엄마랑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제 친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는 거였어요.”

어릴 적엔 박사가 되는 것이 꿈인 조용한 모범생이었어요

그의 어머니는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은 정부에게 범법자로 낙인이 찍혀있었다. 출신이 좋지 않으면 결코 출세할 수 없는 북한 사회에서 자식만큼은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던 그녀는 집안이 괜찮은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너무나 빨리 남편을 여의고 재혼 가정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들은 환경과 상관없이 영리하게 자라났다.

“인민학교 2학년 때 소년단 입단을 하는데 저는 꽤 모범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 미술시간에 쓸 크레용이 없었죠. 저는 도시의 풍경을 그렸는데 크레용이 없어서 연필로 그렸어요. 미술 선생님이 그린 그림을 보더니 크레용 없이도 이렇게 멋지게 그렸구나, 하면서 잘 그렸다고 칭찬받은 기억이 나요. 제가 기하학이나 원근감 도형 그런데 관심이 많나 봐요. 도시 풍경이라는 건 초점과 각도와 그런 게 잘 맞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자연화, 정물화보다 풍경화가 더 좋았어요.”

수학을 좋아하고, 나름 정의감도 넘쳤던 소년의 꿈은 박사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승기 박사가 이슈였기 때문이다. 박사가 정확히 뭘 하는 직업인지는 모를 때였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고 연구하는 걸 좋아했다. 게임을 할 때도 전략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

▲ 자신의 꿈과 비전을 설명하는 강민 씨.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할렐루야교회 김재욱

수능도 봤어요. 그냥 경험 해보고 싶어서…

이러한 성향은 탈북을 한 후에도 여전했다. 여명 학교에 다닐 당시 몇 해 동안 성공한 학생이 없었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미술시간에 주어진 재료로 집을 짓는 활동이었는데 아주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 부품도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집을 짓는데 성공했고 모든 사람을 놀래 킨 이 똑똑한 청년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은 치렀다고 한다.

“제가 수능을 본 건, 한국에 와서 처음부터 그냥 받기 싫었고 도전하고 싶어서였어요. 탈북민은 입시에서 특별전형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직접 제 실력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냥 경험을 해 보고 싶었어요. 대한민국의 교육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도 궁금했고, 한국 사람들에게 수능은 대부분 다 통과하는 엄청 중요한 거잖아요.”

그가 대학을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그리고 놀기 위해. 북한에서도 조직 생활을 하지 않았던 그는 같이 놀고, 어울리는 것을 잘 몰랐다고 한다. 그것이 스스로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학에서 4년 간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사회 경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선택들은 인생에 대한 통찰보다는 순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 용감하고 영리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똑똑하고 모범적이었던 소년은 하루아침에 꽃제비로 전락했다.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며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한 것이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꽃제비 시절은 정글과 같은 삶이었지요

도무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어른들은 자신에게 무관심했고 큰 애들에게는 얻어맞기 일쑤였다. 꽃제비라고 손가락질 받고, 더럽고 냄새 나는 거지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다가 생활을 청산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에도 꽃제비 출신이라는 것은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장사를 하게 되어서 돈을 좀 벌었는데, (북한에는 은행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돈을 날라주는 일을 하던 형님이 돈을 갖고 날랐어요.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서 별 걱정이 없었어요. 근데 형님하고 제가 좀 친했었기 때문에 나쁜 소식이 돌기 시작한 거죠. 제가 꽃제비였고 부모도 없고 도둑질도 했다고. 마치 제가 같이 사기를 친 것처럼 소문이 퍼져서 저는 그 바닥에서 매장을 당했어요.”

스무 살, 돈 앞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을 경험했다. 사회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 속에서 그는 더욱 독해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죄의식이 조금만 더 없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살인과 강도짓을 했을 거라고 회상한다.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생각은 그를 탈북으로 이끌었다. 중국에서도 불분명한 출신에 더 큰 출세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한민국 행을 결정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도착한 한국에서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

차별 속에서 살아온 그는 로마서 3장을 붙잡으며 하나님은 모두에게 차별이 없으신 분임을 믿게 되었다. 그러면서 출세에 대한 강한 욕망도, 두려움과 집착도 모두 내려놓았다.

▲ 아로니아 농장은 그가 남한으로 건너 와 처음 시작한 사업이다. (사진 제공 = 강민)

저에겐 비즈니스가 하나님을 알리는 방법이에요

그렇다면 그의 꿈도 내려놓았을까? 아니다. 더 큰 꿈이 생겼다. ‘My dream’에서 ‘Kingdom dream’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배고픈 자에게 밥 한 숟갈을 더 주기 위해서이다.

그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는 차별 받는 사람들을 위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그에겐 비즈니스다. 돈도, 아이템도 없었지만 배짱은 있었다.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꾼으로 살아왔던 경험은 좋은 양분이 되었다. 그렇게 한국에 자리매김한지 6년 만에 그는 어엿한 사업가가 되었다.

회사의 이름은 ‘꽃제비’. 그의 수치는 자랑이 되었다.

“비즈니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통찰력인데, 저는 그게 조금 보이거든요.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아직 그림이 그려지기 전에 퍼즐만 보고도 퍼즐이 다 맞춰진 상태를 볼 수 있는 거예요. 헌 집을 보고도 이렇게, 이렇게 개조하면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집이 되겠구나 하고 고칠 수 있어요.”

실제로 그는 아이디어가 참 많다. 남들이 놀랄만한 비밀 무기가 그에겐 여러 개 있다. 모든 아이템은 통일을 비전으로 향하고 있다. 어떻게 남과 북이 더불어 살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백 년 기업,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아, 말하고 나니까 너무 뿌듯하네요.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저 당당하기만 한 사람인줄로 알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꿈을 말하는 것이 퍽 쑥스러우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나 보다.

▲ 직접 만든 아로니아 슬러시를 할렐루야교회 청년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강민 씨. ⓒ할렐루야교회 김재욱

아이를 많이 갖고 싶어요! 북적북적하게…(웃음)

사업을 위해 함께 배곯고 별을 보고 땅을 침대 삼을 동역자를 찾고 있다는 그에게 그런 사람이 아내였다면 좋겠다고 말하자 함박웃음을 짓는다. 더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결혼 적령기인 것은 남한 청년, 북한 청년 가리지 않나 보다.

가정에 대한 아픔이 컸지만 그래서 소망도 크다. 자신이 믿음의 1세대가 되기 때문이다. 고성으로 온 이유도 자녀들이 뛰어 놀만한 휴식 같은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도 보인다.

자녀들의 세대에서는 크리스천으로서 적극적으로, 사회를 위해 살아가면 좋겠다고 한다. 앞으로의 꿈도 무엇인지 물어보니 대답이 끊이지 않는다.

“저는 멋진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 영화감독도 해보고 싶은데요. 시도 쓰고 싶고 소설도 쓰고 싶고요. 과학 연구하는 실험실도 차려보고 싶어요. 아 근데 나이가 많아서 이게 될까요? (웃음) 어릴 때 못해본 게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아요.”

죽음을 넘어 온 그에게 어두운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빛나는 미래를 기대하는 생명력이 넘쳐서 이야기를 듣는 나에게까지 흘러왔다. 포기하는 세대, 소망이 없는 세대로 일컬어지는 나의 청춘. 죽어가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그의 삶은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듯 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인생은 축복이라고.

통일이라는 이슈는 이 시대 남한 청년들에게 무거운 과제처럼 느껴진다. 입시와 취업, 결혼과 출산 같은 과제들에 하나가 더 얹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은 경제적 이득을 강조하며 청년들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미리 통일을 경험해보니, 이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역사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이 부활의 세대를 누리는 것뿐, 친구가 되는 것뿐이다. 물론 성경이 말하는 친구의 사랑은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자기 목숨을 버리고 우리의 친구가 된 신의 아들을 의지한다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 : 13)”

그렇게 해가 지도록 그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취재 : 노효신 / 할렐루야교회 청년
편집 : 김재욱 / 할렐루야교회 청년

노효신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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