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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역사와 문화, 언어를 공유하는 북한. 그렇지만 남한과 체제와 이념이 다르고 그로 인해 전쟁까지 치룬 북한. 같은 민족이면서도 광기어린 전쟁 중에 서로 죽이기를 서슴치 않았던 북한은 우리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상대이자 후손들의 장래 소망을 위해서는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원한의 대상이다. 7.4남북공동선언을 시작으로 정부 차원에서 남북간 합의는 계속 있어왔다. 교류와 협력을 통한 신뢰 형성, 상생평화와 공존공영을 약속해 놓고도 쉽사리 과거로 회귀하는 남북관계는 무엇이 문제일까?

전쟁이 멈춰선 지 어언 70년 가까이 되지만 우리의 대북관이 과거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불법 괴뢰집단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주적이고, 세습 독재 체제인 북한을 주된 이미지로 삼는 한 남북협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앞으로 새로운 남북관계, 새로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 단추는 북한을 새롭게 규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북의 분단은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우선 8.15해방 직후 일본군 무장 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진입한 소련이 예상보다 빨리 남하하자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 38선을 그었고 1948년까지 북에서는 소련군이, 남에서는 미군이 행정을 주관했다. 1948년 8월과 9월,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 분단은 국토 분단에 이어 체제 분단이 자리 잡게 됐다.

이후 남북 정부는 각기 자신의 체제를 중심으로 한 민족 통합을 주장하며 통일론을 펼쳤다. 남에서는 북진통일론이, 북에서는 남조선혁명론이 주창됐다. 돌이켜보면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본격적으로 국제 냉전질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유엔 가입국과 중국이 참여하면서 국제전으로 확산했다. 3차 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강대국들의 우려로 인해 멈춰 섰지만,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정전상태로 있는 한국전쟁은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을 남겼다.

북에서는 해마다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기념한다.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켰기 때문에 승리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남침에 대한 응징이었을지라도 평양을 비롯 신의주와 청진, 원산 등 주요 도시에 대한 미군의 폭격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군과 민간을 구별하지 않은 무차별 공습은 뿌리 깊은 반미정서를 북한에 심어주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혁명 논리에 따라 북쪽 지역에서 먼저 이룩한 노동자·농민 중심의 계급혁명을 남쪽에서도 완수하겠다며 남조선혁명론을 자신의 통일론으로 삼았다. 남에서는 유엔 감시하에 치러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창출했으니 남한 정부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논리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미국 군정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정부가 수립되고 소련 군정하에서 소비에트화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가운데 1948년 독립 정부를 세운 남과 북은 이미 처음부터 체제 통합의 한계를 배태(胚胎)하고 있었다. 남과 북 뒤에는 후견국 미국과 소련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냉전의 흐름이 거침없이 전개되던 1991년 노태우 정부는 김일성 주석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을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간 사실상의 종전선언이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전제로 6.15남북공동선언에서는 남과 북의 통일방안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 바탕 위에 통일에 관해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한국전쟁이 국제사회 속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했지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남과 북이 1991년과 2000년 합의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펼쳐나갈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국내정치에서 쉽게 호출되던 이념 갈등, 즉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빨갱이 논쟁이 불거지며 중요한 남북합의들은 빛을 잃었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또 다른 이슈로 제기되자 남북관계는 국제관계의 하부 구조에 갇히게 됐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남과 북 두 자매의 이야기이다. 소련에 시집간 북한과 미국에 시집간 남한. 세월이 흘러 남편을 잃게 된 북한은 가세가 기울었고 유복한 가정에서 근면 성실하게 덕을 쌓아 온 남한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구축해 왔기 때문에 남과 북이 같이 살 수는 없지만, 따로 또 같이 이웃해서 살아가는 ‘자매국가로서의 남과 북’.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교류협력, 남북연합, 완전한 통일국가 순으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상정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남북이 교류협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류협력이 회복되면 그다음 단계로 완전한 통일국가가 아닌 남북연합을 상정하는 것이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남과 북이 당장 체제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비현실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이 불발로 끝나고 이듬해 2020년 6월 북이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이래 남북관계는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당장 통일보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운 체제 유지 전략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불어닥친 후폭풍을 헤치며 ‘정면돌파’, ‘자력갱생’의 길로 나가자고 인민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인도적 지원과 대화를 맞바꾸는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북한 당국은 남한과의 접촉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 등을 연이어 제정했다. 남한과 외부 영향을 차단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1991년 유엔 회원국이 된 남과 북은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국가이다. 이 말은 북한에서 만에 하나 정권 붕괴 후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군이 휴전선 이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근거가 국제법적으로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우리 국민과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경협사업은 북한보다 우리에게 매우 전략적인 가치가 있었으나 섣부른 판단으로 중단된 것이 못내 아쉽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에곤 바(Egon Bahr)가 한반도 통일모형으로 높이 평가했던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경협이 다시금 펼쳐져야 한다. 지난 경험을 교훈 삼아 남북관계 속에서도 국가 대 국가로서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윤은주/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 북한학 박사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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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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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23-07-24 18:58:13

    북한은 아무리 반북세력들이 무너져라고 외쳐도 굳건한 특수국가라는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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