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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월에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다시 전쟁이 기억되는 6월이다. 전쟁은 아프고 슬프다. 아픔과 슬픔 넘어 삶을 망가뜨리고 그 공동체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참혹한 실체가 전쟁이다. 그 전쟁을 겪은 지 70여년, 휴전(또는 정전)으로 멈추었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여전히 이 땅 이 민족은 전쟁 중이다. 정치화되고 이념화된 안보는 평화로움을 지키기보다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는 논리가 되어 약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누르고 처리하는 폭력이 되었다. 아프고 슬프다.

6월 6일, 6월 25일, 현충일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몸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 민족은 슬프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제한된 자유를 얻은 이 민족 임시 분계선 38선은 한국전쟁을 통해 거의 영구 분단선처럼 견고해졌다. 마치 베들레헴을 둘러 있는 긴 콘크리트 장벽처럼 뾰족한 철책으로 엮인 분단의 철망은 사랑도 평화도 민족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까지 절단 내버린 금기의 서늘한 선이 되었다.

70년이 지났다. 1953년 7월 27일, 3년 1개월 2일 동안 멈추어졌던 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같아서는 더더욱 전쟁의 기운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것 같아 불안하고 섬뜩하다. 분단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스치기만 해도 깜짝 놀라게 하고 모든 영역에서 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하게 남아 있다. 제주 4.3, 광주 5.18, 여순, 부마… 도시 이름과 함께 이야기되는 역사의 사건에서 민족 전쟁의 찢긴 메아리를 듣는다.

저 멀리 미얀마의 내전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얼마든지 이 땅이 평화의 땅이 아닌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가시적 현실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는 더욱 불안하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편가름의 정치는 한반도를 가른 휴전선에 극도의 긴장을 주고 연일 날선 대립과 갈등으로 불안한 날을 지내게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한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평화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하며 살겠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후에 태어날 아기 예수를 향하여 “한 아이가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으니 이는 평강의 왕(SA SHALOM)이라 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들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노래를 부른다. 그리스도의 탄생이야말로 이 땅에 온 인류의 평화임을 선포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평화는 모든 곳에 필요한 일이다.

샬롬의 평화는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온 세상 구석구석에서 갈등을 치유하고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 희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의 몸이 평화로우면 건강하고, 숨도 고르고, 소화도 잘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샬롬으로 평화를 이루면 대화가 순조롭고 서로에게 막힘이나 거리낌 없는 진실과 정의가 이루어진다. 가정과 교회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살롬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시편 85편의 말씀처럼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의 자리에 아름답고, 그리고 치열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6월에 우리 주님 예수께서 주신 말씀을 진심으로 듣는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다.”

김의신/ 광주다일교회 담임목사

김의신  euishin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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