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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평화통일을 포기할 수 없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체적 진실

지금, 세계는 전쟁 중입니다. 아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세계대전이라 말하지 않지만, 지금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나라나 사람들 중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국가나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세계는 지구촌화 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전쟁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국력을 총동원한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특수작전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전면전이죠. 총력을 다해 러시아와 대항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먼저 침공을 했으니까 객관적 사실은 분명히 러시아가 가장 많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전범이고 우크라이나는 정당방위로서의 소극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상과 같은 전쟁 주범 가리기가 진실이 되려면 중요한 진실들이 규명되어야 마땅합니다. 러시아는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왜 선제 공격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국가의 안보적 측면, 경제적 측면, 군사적 측면 등 다방면에서 객관적 검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러시아가 내세우는 입장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그것은 러시아에 대한 실제적 선전포고라고 주장합니다. 안보적 차원, 경제적 차원, 군사적 차원에서 러시아 영토 내에서 일어나는 내전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입니다. 물론 서방이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수긍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주장을 수용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주장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저는 매우 역설적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물을 보면 양쪽 주장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양국간의 견해 차이, 또는 러시아와 서방국가간, 특별히 미국과의 견해차가 팽팽히 평행선을 달리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전쟁의 결과가 무엇이죠?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 나토의 입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러시아는 결단코 우크라이나를 이길 수 없다. 나토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멸망을 결단코 용납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실수했다. 푸틴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보라! 결과가, 역사가, 서방의 편에 서서 그것을 입증할 것이다.’ 이것이 전쟁 초기부터 지금까지 서방의 일방적이고 초지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이 지났지요? 지금 전쟁 후 세계적 현상과 전망은 어떠합니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소위 신냉전 전선이 형성되었습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이 철저한 동맹국이 되고 미국을 비롯한 나토와 일본이 동맹 전선을 굳혀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방의 대표국인 미국의 바이든은 전쟁 후유증인 물가고로 인해 국내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감소되어 가고 있는 데 반해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영향력은 전쟁 때문에 점점 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명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서방에서는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고, 러시아에서는 점점 강화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서방의 지도적 국가들이나 나토 동맹국들의 협력 시스템도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일치 단결을 외칩니다. 물론 안보면에서는 당분간 단결이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방 각국의 경제적 상황은 훨씬 복잡합니다. 러시아에 대응하는 서방 국가들의 경제적 입장이 일치 단결하여 러시아를 고립시킨다?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아니,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처럼 대 러시아 항전에 대한 서방세계의 대응에는 시간이 갈수록 약점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국제 관계적 요인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가 과연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만 보더라도 무얼 위해 이런 지독한 희생을 치루어야 하지?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당한 대답을 찾기는 결단코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프란체스코 교황까지도,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러시아가 아니라 전쟁을 촉발시킨 다른 세력이 있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두려워 말라는 이야기는 옛이야기입니다. 강한 자들의 자기 변명,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자기 합리화일 가능성이 훨씬 커졌습니다.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만큼 위대한 지도력은 없습니다. 어쩌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만큼 위대한 지도력은 없습니다. 전쟁만큼 반인륜적이고 반평화적인 야만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범들을 합리화시키고 찬양하는 데 열을 올립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영웅이 되어 가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는 젤렌스키를 영웅화 하는 일에 열을 올립니다. 아닙니다. 이들은 결코 영웅이 아닙니다. 푸틴처럼 젤렌스키도 전범일 뿐입니다. 냉철한 눈으로 진실을 보면 바이든도 실상은 전범일 가능성이 엄청 높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체적 진실입니다.

2022 한반도 평화학교에 참여한 해외청년, 경기청년들이 지난해 8월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았다. ⓒ유코리아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평화에 끼치는 영향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평화에 끼치는 영향력이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연구와 합의가 요청되는 긴급한 과제입니다. <한반도 평화에 끼치는>이라고 범위를 제한한 것은 그 영향력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영향력 문제도 저 같은 비전문가가 논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저 같은 비전문가가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전문성보다 상식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만 아니라 세계에 끼친 중대한 영향력은 30년 전에 해체된 동서냉전구도를 다시 신냉전체제로 환원시켜가고 있다는 것은 전문가만 아니라, 누구든지 공감하고 있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냉전체제로의 환원이라고 단언하지 않는 것은 신냉전체제가 30년 전 동서냉전체제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른가? 정확한 분석을 하는 것은 저의 역량을 넘어선 범위입니다. 신냉전체제가 구냉전체제와 가장 확실하게 다른 점은 신냉전체제는 군사적‧안보적 성격이 강할 뿐,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격이 한반도, 특별히 한국정부에 어떤 영향력을 줄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한반도엔 새로운 정부, 곧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주지하다시피 전통적 안보론에 강합니다. 전통적 안보론의 특징은 경제와 군사적 안보를 구별하지 않는 경향성이 강합니다. 예컨대 과거 진보정권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런 식의 양면선을 지향해 왔다면 윤석열 정권 같은 보수 정권하에서는 이런 구별을 줄타기 외교라고 폄훼하는 경향성이 강합니다. 미국도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지난날 한국 진보정권들이 걸어온 길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국익우선 정책과 한국의 윤석열 보수정권의 경향성이 서로 짝짜꿍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이 한국 경제에 끼칠 부정적 영향력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예컨대 나토의 방위권 전략을 유럽만 아니라 태평양권으로 확대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우리가 편승할 때 중국과 러시아의 만만치 않은 경제적 보복을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고 G2에 진입하는 길을 막기 위해 한국에게 태평양 경제공동체에 합류하여 함께 중국의 경제적 성장을 억압하자고 요청하는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숙고해야 합니다. 여기서 경제와 안보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전략적 측면에서 신냉전체제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8,000만 한민족의 안보와 행복을 위해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한미는 4년 7개월 만에 항공모함을 동원한 한미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한미연합훈련이 끝나자마자 여덟 발의 미사일 발사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당연히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재래식 군사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북한은 그런식으로 군사적 대응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주한미군도 합세하여 여덟 발의 미사일 발사를 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보응 정신이었을까요? 도발에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결연한 자세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방어 조치는 도발이고, 우리의 군사훈련은 방어훈련이라? 이런 식의 논리가 당당한 민족의 자존심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군사적,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북한보다 7배나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가 10여년 전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거리에 나부낀 현수막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잃을 것도 없다.” 참으로 섬뜩했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만일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떤 양상이 전개될까요? 국지전 같은 현상이 먼저 있겠지요. 잘 관리하지 못하면 금방 확전이 될 것입니다. 만일 북한에서 한국의 인천공항을 때린다면 어찌할까요? 물론 우리는 평양의 순안공항 등 수십 배로 보복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이것이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말하는 ‘중간전’입니다. 전면전! 곧 핵전쟁으로 가기 전, 이러한 중간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과연 누가 더 심오한 타격을 입을까요?

남북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박명림 교수가 말하는 중간전이 가능할까? 바로 전면전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북한 군부에서 소장 간부를 지냈던 북향민(탈북이주민)을 만났습니다. 그는 중간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북한 군부의 소장파 장교들은 남한에 대한 원성이 높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단숨에 승부를 가리려 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면전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지요. 물론 아무도 전쟁 발발 이후의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즉시 군대의 작전권은 유엔군(미국)으로 넘어갑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전쟁이 핵전쟁이 된다면 서울과 도쿄가 동시에 핵공격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할 뿐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도 핵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국지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나 높습니다. 국지전이 관리되지 못하면 중간전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중간전으로 확전되면 미국은 어찌하든지 핵전쟁으로 가지 않기 위해 남쪽의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확전 방지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중간전은 한국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종식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가상 현실을 예측하는 것은 쓸모없는 기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전쟁이라도 해서는 안 될 우리로서는 여러 가지 가상 현실을 예측하면서 전쟁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을 결코 원치 않겠지만 한편으로 미국은 자국 중심의 동북아 안전을 위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한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입니다. 미국의 국익에 합치될 때만 그러한 수사를 동원한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가 미국의 국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자신, 곧 8,000만 겨레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가 미국의 국익과 일치되도록 노력하는 국제 정치적 감각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륙세력인 중국‧러시아와 해양세력인 미국‧일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 외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줄타기 외교는 국익 중심의 균형외교일 뿐, 의리를 배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익 중심 외교, 균형외교를 줄타기 외교라고 폄훼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았습니다. 균형외교를 통해 이 땅에서 어떤 형태의 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전쟁을 예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진실은 없습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들 스스로 한반도의 운명을 가리켜 고래 싸움(미국, 중국)에 새우 등 터진다는 자조적 탄식을 하는 것이 상식인 듯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위상은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입니다. 돌고래의 기민함과 민첩성으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권하에서 한국의 균형외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제는 그 가능성을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민족공동체가 이루어놓은 위대한 역사적 과업에서 후퇴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의 기운을 진작시키려면

전쟁 예방을 위해서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의 기운이 진작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기운! 어떻게 해야만 그 거룩한 기운을 진작시킬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방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평화의 기운이 여기저기서 샘솟아야 합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전부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고, 또 우리 평화통일연대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첫째, 평화적인 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하는 토론, 곧 평화담론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한때 우리는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 때문에 평화가 먼저냐? 통일이 먼저냐? 이런 논쟁에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평화가 먼저지요. 우리는 결코 통일 지상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평화 후통일’ 같은 논쟁은 동전의 양면을 놓고 어디가 과연 앞인가?를 따지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통일을 위해 평화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평화가 먼저입니다. 그것이 민족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절대 선이기 때문입니다. ‘선평화 후통일’ 혹은 ‘선통일, 후평화’ 이런 논쟁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훼방하기 위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염불인 것을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까지 수차례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거나 위임 받은 자들을 통해 남북통일의 로드맵을 만들어 왔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이 서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하나되는 큰 원칙에 합의했고, 그후 이어진 남북회담에서 항상 기본정신(원칙)이 되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진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원칙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이 가장 구체적 합의로 드러난 것은 노태우 정부에서 체결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였고, 그 구체적 실천은 2002년 김대중 정부의 6.15선언이었습니다. 지금 남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남남갈등은 과거 보수와 진보 정권에서 이미 합의되고 해결된 문제들입니다. 예컨대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김대중 정부의 핵심 정책인 평화통일운동을 설명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평화통일정책은 노태우 정부 때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70년 초부터 남북 통일을 위해 주변 4대국 협상을 주창했고 소위 3단계 통일론을 제안했습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천착했던 군계일학 같은 정치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 통일정책을 추진할 때는 보수 정권에서 이루어 놓은 평화통일 로드맵을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평화통일 로드맵은 기본 원칙이 이미 합의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평화통일의 여정에서 남남갈등은 만만치 않습니다. 남남갈등마저 그토록 어려운데 하물며 남북갈등은 어찌하겠습니까?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도 가야만 할 길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다 보면 마침내 우리는 목표 지점에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평화냐? 전쟁이냐? 중 선택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 길, 평화의 길로 매진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각각 독립국가로 살아갈 수는 없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5,000년 역사를 없는 것처럼 생각하자는 허구일 뿐입니다. 분단 유지 비용이 통일 비용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입니다.

둘째,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는 북한을 돕는 일입니다. 이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1970년대까지는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의 경제 상황이 남한보다 좋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의 내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남한은 반쪽 민주주의였지만 민주적 자율성과 창의성 때문에 꾸준히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은 1990년대 들어 국제적으로 동구권이 붕괴되고 국내적으로 3-4년간 지속된 역대급 대흉년으로 인해 경제적 축이 무너졌습니다. 그 결과 북한과 남한의 경제적 격차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북한은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모르는 체 하면서 수용했지만, 김정은 위원장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어떤 명분으로든지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거절합니다. 국가와 국가간의 호혜 원칙에 근거한 상호 협력만 가능할 뿐입니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결코 녹녹치 않기 때문에 국가간 동등한 호혜원칙으로서 남북의 경제적 상호협력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찌해야할까요? 남북이 동등한 입장에서 호혜협력의 형식을 철저히 지키면서 실제적으로는 남한의 경제력으로 북한 경제 건설과 북한 주민의 삶을 도와야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길은 있습니다. 그 길을 선제적으로 찾아 나서는 책무가 우리의 것입니다. 남과 북의 협력은 성서적 의미에서는 필연이고 세속적 의미에서는 운명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하면 공멸입니다.

이와 같은 남북 공동체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남한 주민들이 많다는 것도 남북 협력의 장애물입니다. 이런 현상의 중심에는 벌써 70년이 지난 한국전쟁의 후유증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비극이었습니다. 침공의 이유야 어찌되든 침공 당사자는 명백히 북한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체험했던 세대가 북한을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상 6.25 세대는 태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2세대는 1세대와 감정적으로 완전한 동일체입니다. 그러므로 70대 이상은 6.25 1세대와 운명적‧감정적으로 동일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가 북한 공산 정권을 용납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다가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자! 지금 북한이 심히 곤경에 빠져 있으니 저들의 곤경을 돕자’고 하는 호소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북한 돕기는 일방적 퍼주기입니다.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러나 보편적 인간 관계에서 얻은 교훈이나 국가간의 긴 역사적 교훈이나 미움과 증오는 더 큰 상처를 가져올 뿐이라고 가르칩니다. 한반도는 아직 전쟁 상태입니다. 휴전 협정 때문에 잠정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제 다시 전쟁이 재개될지 모릅니다. 전쟁보다 더 큰 악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찌하든지 전쟁 종식과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만일 남과 북의 국력이 동일한 가운데 증오가 계속된다면 전쟁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다행히도(?) 남한의 경제력이 월등해서, 마음만 먹으면 북한 경제의 도약과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도움을 받게 되면 미움과 증오의 벽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증오의 기운이 없이는 전쟁은 불가능합니다.

국가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을 돕되 북한 당국자들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북한 주민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매우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 상인>에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가 소개됩니다. 악덕 대부업자인 유대인 샤일록은 돈을 빌려 주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일정량의 살(몸)을 보상해야 한다는 각서를 받습니다. 가난한 채무자는 기간 내에 돈을 갚지 못합니다. 채무자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샤일록은 끄떡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재판이 붙었습니다. 현명한 재판장의 명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계약서의 내용은 살을 몇 그람 띄어내기로 했지 피를 흘리는 것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니 피 흘림이 없이 약속한 살점을 띄어 가라!’ 명 판결이지요.

그렇습니다. 북한을 돕는 과정에서 북한의 정권 담당자들과 북한 주민을 구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런 주장을 한 사람들의 속셈은 뻔합니다. “나는 북한을 돕자는 인도주의자다. 그러나 북한 공산집단을 돕는다는 것은 민족적 양심으로 허락할 수 없다.”

참 놀라운 박애주의자요, 민족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결과적인 위선입니다. 한국 사회의 관료와 지식인들 가운데 이와 같은 위선자들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역사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인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북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옛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된 후 150여년을 싸우다가 결국은 남과 북이 각각 당대의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 세계 6대 전술 핵보유국인 북한! 5,000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70년을 원수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우리는 눈물로 평화의 씨를 뿌리는 것뿐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셋째,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단순히 국내 문제만 아니라 국제 문제라는 것과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는 단기 과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의 상호 노력을 통해 성취되는 장기 과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통일이 도적같이 올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급해서는 안 됩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평화통일연대는 이런 철학과 전망을 가지고 조직 내에 ‘동북아평화교육원’을 두었습니다. 처음 생각은 중국, 일본, 북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삶을 나누고 문화를 공유하면서 미래의 동북아 평화를 꿈꾸자는 것이 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은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21년 경기도에서 한반도 평화학교를 개설하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단체를 모집했습니다. 우리가 꿈꾸어 오던 일이기 때문에 공모에 참여했고 우리는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두 번째 국제평화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청년 10명, 세계 각국의 청년 10명 등 20명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평화교육과 평화체험을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경기도는 3개 단체에 각각 4,500만원의 재정 자원을 하는 통 큰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한 해 동안 외국인 청년 30명, 경기도 청년 30명이 평화교육과 평화체험을 나누면서 미래의 평화 세계를 꿈꾸게 된 것입니다.

2010년 11월 19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평화통일연대 10주년 기념식. Ⓒ유코리아뉴스

우리 평화통일연대는 경기도로부터 위임 받은 한반도 평화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단순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최고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자! 그 기억을 잊지 못해 참가자들이 결국은 평화 옹호주의자들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경기도에 주소를 둔 한국 청년들과 한국에 유학 온 외국 학생들이었습니다. 유학생들의 경우는 주소지 제한이 없었습니다. 기대 효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특별히 외국 유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유학생들의 한국어 이해 수준은 탁월했습니다. 아주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중국, 베트남, 대만, 일본,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얼마나 준비된 사람들인가를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각자가 서로 다른 전공자들이었지만 평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 각자의 역량을 따라 자국의 평화 증진을 위해 헌신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 구축을 위해 강력한 지지자들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얻었습니다. 1기, 2기 평화 교육을 마친 사람들에 대한 후속 조치도 우리가 안은 과제가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경기도가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놀랄 일입니다. 저희들 생각은 경기도가 시작한 국제평화학교가 전국 지자체들로 확산되어서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 가운데 매년 300명 정도가 평화 교육(체험)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10년이면 3.000명의 국제 평화주의자들이 교육되고 이들이 마침내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지지하는 평화의 사도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평화통일연대가 일찍이 국제 평화학교를 꿈꾸었던 것도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독일에 1953년에 설립된 EU아카데미(Academy)가 있습니다. EU아카데미는 독일과 프랑스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대화하고 친교하면서 역사적 원한을 극복해 보자는 의도로 설립된 민간 단체(NGO)입니다. 그들은 꾸준히 프랑스와 독일 청년들의 만남을 지속했고 대화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만남의 범위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EU아카데미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주관한 대화와 친교 프로그램이 EU공동체를 탄생시킨 저수지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진실이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공감이 가슴 깊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늦은 감이 있지만 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고 결심했던 것이 평통연대 안에 <동북아평화교육원>을 두게 된 배경이었습니다. 물론 동북아평화공동체 형성은 EU공동체보다 근본적인 난점이 있습니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 끼친 해로운 일들도 아시아 평화공동체 형성에 큰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평화는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세계와 아시아인의 꿈입니다.

장애가 있을수록 도전의 정신도 강해질 것입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에 유학 온 대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기회가 항상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너무 제한적으로 생각해 온 것도 이 땅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평화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평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헌신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한국교회가 한국 정부, 지방 자치단체, 기업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겸손히 헌신하길 기대합니다.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서양 속담에 “중요한 일은 바쁜 사람에게 맡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화진작과 평화통일운동을 위해 기도하면서 월 1만원씩 후원하는 후원회원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 회원은 아래 구좌로 자동이체 되도록 조치해주시면 가장 좋습니다. 

지속 가능한 기도회원(후원회원)이 되시려면 월 1만원이 적당합니다

후원회원은 주요 포럼에 초대됩니다.

 

국민은행 012501-04-219046

사단법인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강경민  nil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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