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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장 30년의 교훈

북한이 1993년 3월 NPT(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북한발 핵 위기 정세는 올해로써 30년이 넘고 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맞대응으로 조성된 3차 위기 국면에서 정상회담을 통한 하향식(top-down) 해법이 모색됐다. 2018년 6월 1차 회담은 성공적이었지만, 2019년 2차 회담이 결렬되면서 중재에 나섰던 우리 정부의 역할이 무색해졌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관계는 중요 계기마다 남북관계와 맞물렸다. 우리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긋나기도 하고 맞아떨어지기도 하면서 다양한 경우의 수가 드러났다. 이제는 북한의 핵무장을 현실에 맞게 평가하고 모두가 안심할 만한 조건을 찾아야 할 때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2017년 9월까지 6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음이 명백하다. 1차 핵위기 당시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원점 타격을 고려한 바 있지만, 남한 사회와 주한미군의 피해 규모를 추산했을 때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군사적 해법 이외의 선택지는 대화와 협상이다. 1994년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를 시작으로 2000년에는 북미 코뮤니케가 채택되기도 했다. 이후 6자회담을 통해서 2005년 9.19합의와 2007년 2.13합의가 성사됐다. 2018년 6월에는 최초의 북미 정상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렵게 성사시킨 역대 합의들은 모두 수포가 되었다. 1997년 북한 신포지구에서 시작된 경수로 공사가 완성됐다면, 2000년 말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아닌 엘 고어가 당선되었다면, 북한의 핵 문제는 해결됐을지도 모른다.

제재나 합의를 통한 북한의 핵 개발 억제가 모두 실패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까? 북한과의 체제 대결에서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 사회 일각에선 두려움과 증오심이 팽배해 번번이 대북정책의 발목을 잡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이해한다면 시대 변화에 걸맞은 대북관과 통일론을 정립하고 냉철하게 국익을 챙겨야 할 때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어 남북관계 복원 전망이 불투명하고, 2018년과 같은 기회가 다시 올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 완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닦아나가는 길이 국제 평화를 추구하는 길과 맞닿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북한의 핵무장 30년을 역사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선군정치를 앞세웠던 김정일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용으로 핵 카드를 활용했다. 체제 안보에 확신이 선다면 선대의 유훈인 비핵화 실천에 나설 수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식 사회주의론’,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한 체제 유지, 그리고 나진-선봉 등 특구를 통한 경제개발 등은 탈냉전 시대로 접어든 북한의 국가전략이었다. 1992년 1월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가 아놀드 켄터 국무부 차관과 회담할 당시부터 북한은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지 않은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붕괴를 예측했던 미국 입장에서 응할 이유가 없었다. 1990년 한·소 수교와 조응하는 차원에서 북·미수교가 이루어졌다면 북한이 체제 안보를 위한 핵무장에 나서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북한의 체제 내구성은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한 통치 담론과 수령-당-인민이 연대하는 유기체적 사회구성에 기반한다. 수령과 체제가 하나로 통합된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인민은 수령을 보위하는 ‘총폭탄’, ‘핵폭탄’이 된다. 북한의 세습 권력은 인민들에게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인민에게 체제 부정은 자아 부정과 같기 때문이다. 경제의 궁핍함을 벗어나는 일과 체제를 보위하는 일 중에 우선순위는 당연히 체제 보위에 있다. 이는 정권이나 인민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므로 핵 카드의 등가는 경제발전에 대한 청사진이 아니라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이다. 실제로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합의는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비핵화로 나아가자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계속해서 투발 수단을 다변화하고 핵탄두를 소량화, 경량화하고 있다. 2021년 제8차 당 대회에서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를 천명한 북한은 현재까지도 계속 핵무기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전술핵무기 개발에 이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2019년 이후 남북, 북미 대화 단절 시간은 북한이 맘 놓고 핵기술을 높이는 데 쓰이고 말았다. 바이든 정부는 대북정책보다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을 잇는 군사패권 구축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한 우리의 안보 불안은 오히려 미국의 군사패권을 강화하는 재료로 소비되는 형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기치로 유례없는 군사훈련을 펼치고 있다. 한반도에 다시금 열전이 전개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의 가르침이다. 북한이 안보 불안증에 시달리며 추구했던 핵무장은 이제 거꾸로 우리에게 안보 불안증을 던져 놓았다. 이는 북한을 ‘불량국가, 악의 축’으로 규정해온 관성적인 불신과 적대의 대가이다. 합의 이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북한이 정상 국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안보와 경제발전을 돕는 일은 상생(相生)을 예비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한다고 더 위협적인 군사 행동을 이어간다면 공멸(共滅)의 시간을 재촉할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이 핵무장에 나섰던 배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자세는 역지사지이기 때문이다. 북한 주장을 이해하며 정책을 펼칠 때 종북(從北)이라 규정하고 비난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종북과 지북(知北)은 엄연히 다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의 뜻을 알면서도 정치 공방에 빠질 이유가 있는가.

우리 국익이 다시금 패권국들의 경쟁 속에 파묻힐 수 있는 시국이 돌아왔다. 나라 잃은 설움을 똑똑히 기억하는 우리는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 주변국들의 이해타산을 꿰뚫으면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해력을 키워야 가능한 일이다.

윤은주/ 뉴코리아 대표, 외교광장 부이사장, 북한학 박사

*이 칼럼은 <남북물류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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