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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 출범과 대북정책 과제KPI 이슈브리프(2022년 3월)

1. 정치의 계절, 정책의 계절

선거 때까지는 정치의 계절이다. 지지자를 결집시켜야만 한다. 중도층 지지를 영끌해야 한다.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손잡아야 한다. 자극적인 구호도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0.7% 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린 초박빙 선거였다. 후보들은 목숨을 걸고 서로를 차별화하고 공격했다.

선거가 끝나고 정책의 계절이 왔다. 윤석열 당선인의 입에서 나온 통합과 실용의 강조는 이재명 후보도 선거철에 누누이 강조했던 대목이었다. 국정운영은 지지자들을 상대해서 흥을 돋우는 선거운동이 아니고, 전 국민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선거라는 정치의 계절이 지나고 국정운영이라는 정책의 계절이 왔다. 북한도 선거 전후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며 어떻게 할 건지를 묻는 듯 행동했다. 선거 때까지는 후보들 모두 도발을 규탄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에는 규탄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 한반도의 문제는 북한만 고려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복잡한 변수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과거에도 한반도 문제의 복잡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더 복잡해진 양상이다.

 

2. 지정학과 지경학의 복합위기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급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우리에게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전이 장기화될수록 북중러의 규합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불 보듯 뻔하다. 지난 3월 2일 유엔 긴급특 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가 채택됐을 때 회원국 3분의 2 이상인 141개국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중국은 기권, 북한은 반대표를 던졌다. 북중러의 규합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만일 우크라이나전이 장기화되고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이 심해지면 러시아는 미국에 맞서자며 중국과 북한에 손을 내밀 것이고 전통적인 북중러 결속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공산이 크다. 미국은 이에 대해 유럽 전선은 유럽 전선대로 대응하는 한편,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이 재현된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치와 충돌이라는 지정학의 귀환이 한반도에 본격화하는 것이다.

지경학적으로도 위기가 가중될 수 있다.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정치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지경학의 사고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해서 더욱 강하게 표출될 수 있다. 서유럽이 청정에너지 비중을 높여가면서 러시아의 대유럽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공급망은 축소될 전망이 높았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런 가운데 중국의 일대일로 인프라 투자가 계속되면서 러시아도 자신들의 화석연료 공급망과 관련 인프라를 기존의 대유럽 서진(西進)에서 대중국 및 중앙아시아 동진(東進)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러시아는 지경학적 활로를 서에서 동으로 바꾸면서, 서방에 대해서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를 치는 방식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지경학적으로 에너지 동진을 할 때 향후 북한이 나진-하산 등지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망 동진 전환에 호응하고 중국도 이에 일정 부분 동조할 경우 북중러의 규합은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에너지 인프라 문제라서 단기간에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및 수출망 전환 움직임에 북한이 반응하고 협력관계를 추진한다면 대북 에너지 공급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대북 제재에 장기적으로 허점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협력에 대한 유인이 더욱 줄어들 수 있어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전을 지구 반대편 일로 보면 안 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종식을 위한 국제사회 협력에 동참하는 한편 북한이 중러 협력만을 유일한 카드로 생각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북 제안들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3. 연계론의 덫과 병행론의 늪을 넘어서

지속적인 대북 제안을 할 때의 핵심 고려사항은 단연코 비핵화이다. 신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제사회와 국내여론 모두 북한의 비핵화를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제1과제로 지목할 것이다. 신정부가 대북 제안을 할 때 구체적인 비핵화 성과를 연계해서 가느냐, 비핵화 성과도출 이전이라도 비핵화 논의를 병행하면서 가느냐가 대북정책의 중대 기로이다.

현재 윤석열 당선인의 대북정책 구상을 살펴보면 연계론에 가까워 보인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경우에 한해 남북공동경제발전계획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조건부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공동경제발전계획과 그 미래상이 구체적이고 뚜렷할 때, 즉 핵무기를 보유할 때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한다는 것이 확실할 때 호응할 수 있는 구상이다. 혹은 대북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여서 북한이 비핵화 할 테니 무조건 살려달라고 나올 경우에만 가능한 구상이다.

전자의 제안을 한다면 결국 완벽한 의미의 연계론이 아닌 비핵화와 대북 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병행론으로 환원되는 논리적 모순도 발생한다. 후자를 추구한다면 과거 고난의 행군부터 대북제재 장기화와 코로나 셀프봉쇄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북한을 고려할 때 언제 달성될지 모를 과제이다. 자칫 잘못하면 북한을 초기 대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언제 성과가 나올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흘려보낼 수 있다. 연계론이 언뜻 듣기에는 선명하지만 그에 매몰되어서는 대화가 한 치 앞도 나아가지 않는 덫에 걸릴 수 있는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병행론도 이야기한다.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자는 것이다.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목표를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이에 이르는 단계별 이행방안을 마련하여 실행하자고 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이 역시 구체적인 대북 제안을 통해 북한에 확실한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이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이 핵심이다. 한미 공조를 통해 제재완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포함한 ‘새로운 계산법’을 북한에 제시해주어야 이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도 가능할 텐데 현재로서는 미국의 대북제재 고수 입장과 북한의 정면돌파 버티기가 어우러져 병행론도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여 북미가 대화를 재개하고 남북대화가 다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비핵화의 각 단계에 대한 정의와 검증방식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병행론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지만 치밀한 사전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머지않아 늪에 빠져버려 허우적거리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신정부는 이 연계론의 덫과 병행론의 늪을 모두 건널 수 있는 새로운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4.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넘어서

대선과정만 놓고 보면 신정부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남북관계 바로잡기라는 이름하에 대북 강경모드로 몰고 나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대북기조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선평화·후통일 원칙에 입각해 있다. 정권별로 남북관계의 부침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이래 1970년대부터 견지해오고 있는 일관된 기조이다. 전두환 집권기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노태우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김영삼 대통령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화해협력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 이명박 대통령의 상생공영의 대북정책,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까지 모두 선평화·후통일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이 원칙에 터를 잡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제시하고 있는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 중 앞의 두 단계는 명실상부 ’선평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 출현 이후 이 선평화 단계의 목표인 남북연합 실현이 장기 정체상태인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역대 정부들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 핵문제 출현 이후 한반도 상황관리와 평화정착을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1단계인 화해협력 단계 언저리를 계속 돌고 있는 형국이다.

더군다나 분단을 별로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로 여기지 않는 젊은 세대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래의 이벤트인 통일의 목표가 과거지향적인 민족동질성 회복과 단일국가 형성이어야 하는 점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지를 기억하는 사람들 자체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선후관계로 본다거나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을 버리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도 자라났다. 평화는 언제나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자 목적이고, 통일은 평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결과로 얻을 수 있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이 마치 선후관계가 있다거나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한 것처럼 논의하는 오해도 존재한다. 이제는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다.

평화를 강조하면 통일을 포기한다고 볼 것이 아니라 통일의 의미를 다양하게 재구성하는 출발점이라고 보고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도 과감히 ’남북관계‘가 아니라 한일관계, 한중관계를 다루는 것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를 의미하는 ’한조관계‘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특수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로 접근해보는 검토도 필요하다. 연합이나, 연방을 통일의 중간단계가 아닌 통일의 최종단계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도 열어두고 통일의 의미를 다양하게 디자인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 평화공존을 사실상의 통일로 인식하는 여론의 흐름도 건설적으로 반영하는 한편 북한도 평화공존의 틀에서 안심하고 남북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한미동맹에 속절없이 당한다고 여긴다거나, 통일이라고 하면 단일국가만을 전제로 생각해서 무조건 남한에 흡수된 다고 오해하는 가능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북한 스스로 핵능력을 강화시키는 것보다 핵을 버리고 평화공존과 경제건설을 선택하여 새로운 통일과 평화 패러다임에 동참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행동하도록 장기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5. 나가며

1988년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동서냉전의 해체라는 격변기에 북방정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남북관계를 새롭게 썼다. 군부 출신 대통령의 수구 정권으로 일관하지 않고 합리적 중도 성향의 이홍구 교수를 통일원 장관으로 영입하여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입안했다. 그리고 이를 여야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국회 특별연설로 발표했다. 1991년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성공시키면서 동시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국제사회에서는 두 국가이면서, 남북한 내부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합의하는 절묘한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루었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지도 않았고, 너무 앞서나가지도 않으면서 당대에 필요한 전환을 이루었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나왔고,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3단계 통일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했다. 당시 수평적 정권교체의 시대정신에 맞는 행보였다. 그리고 정책의 지속성 차원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대북화해협력정책을 구체화했다. 그 결과 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도 개최하고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굵직한 남북 화해협력 시대의 교두보를 쌓았다.

그 사이사이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굴곡이 많긴 했지만 큰 틀에서 남북관계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 나아가고 있다. 신정부도 이 강물을 역행하지 않을 역사적 책무가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집단지성은 이 도도한 물길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신정부를 인도할 것이다. 이유 없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증오보다는 사랑을 가르치신 하나님의 뜻도 우리의 간구에 따라 함께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대진/ 한라대학교 교수, 한반도평화연구원(KPI) 연구위원

정대진  jungdae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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