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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종전선언 제안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지난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빌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2018년, 2020년에 이어 임기 중 벌써 세 번째이다. 3박 5일간의 방미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는 평화협정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입구로서 종전선언의 지위를 상기시키고, 그 시기와 효과에 대해 전략적 검토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9월 24일, 25일 연달아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남측의 태도변화를 전제로 종전선언 및 정상회담, 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등의 추진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경색되었던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치적 선언으로 이어진다면 그 다음은 비핵화 진전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협상의 의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분단국가가 지향하는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가 주는 효능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긴요한 과제로 남는다.

평화는 단순히 보면 분쟁이 제거된 상태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전 세계평화의 날(9월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도널드 레이건의 ‘평화론’을 인용한 바 있다. 이후 실용적 평화, 과정적 평화기조 하에서 한반도 분쟁상황을 군사적 옵션이 아닌 평화적·외교적·정치적 해법에 방점을 두고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왔다. 더욱이 정전 중인 분단국가의 경우, 분단과 통일, 분쟁과 평화라는 중층적 구조와 맞닥뜨리게 되므로 평화의 개념을 완료형으로 사용할 경우 통일의 목표가 약화, 배제됨에 대한 논쟁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평화 프로세스 안에 분단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여러 제반논의들을 담아내는 것이 사회통합의 견지에서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개념은 “남북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것으로 남북한이 새로운 경제 공동체로 번영을 이루며 공존하는 ‘신 한반도 체제’의 미래를 위한 노력과정”을 의미한다. 통일에 대해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4대 전략에서 호혜적 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기반 조성으로 남북 구성원이 합의하는 평화적·민주적 통일 지향을 소략히 명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통일보다 평화공존이라는 현실적 접근, 즉 신한반도체제 구축을 위한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경제공동체적 공존이 평화프로세스의 요체이다. 내년 5월, 새 정부의 임기가 시작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4년 여간 경험에 비추어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의 선결과제와 순기능에 대해 적의(適宜)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선결과제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의 해결 및 항구적 평화정착을 평화프로세스의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의 핵 보유 명분을 -경제적 보상, 상호 군축 등 역내 안보환경의 형질변화를 통해-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경우, 유사시 남북한에 자동군사개입이 가능한 ‘그레잇 파워’인 미중과 국제사회의 한반도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에 관한 강한 지지가 필수이다. 그러나 미중 간 경제·군사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아·태지역 내 갈등구조 하에서 한반도 평화가 이들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당사국인 양국에 대한 설득논리를 개발, ‘미들파워’ 국가들의 공조를 끌어내는 한편, 긴 호흡의 전략적 공공외교를 통해 미·중(러)의 관여적 중재를 유도하고, 북한의 위협인식의 조정을 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4~5년 단위로 대선을 치르고 새 정책기조를 맞이하는 한미의 정치적 형편을 고려하면, 과거 예멘의 사례처럼 신속한 평화협정의 체결이 가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동 사례는 협정의 유지 및 실행기반이 취약했던 실패 사례임을 반면교사로 삼아 기존합의에 대한 존중과 실천을 통한 협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평화협정 체결이 수반할 순기능이다. 평화협정 체결로 상호 군축 등 정치적 불신요인이 걷히고 평화공존기 남북간 경제·교류협력의 지속성이 제도화·활성화된다면 과거 남북간 10년 이상 추진되었던 금강산, 개성공단의 사례처럼 분야별 경제협력을 통해 일자리 창출, 인프라 구축 등 한반도 경제지형의 확장을 도모하고 평화공존의 시기를 구가(謳歌)할 수 있다.

①우리기업에게는 내수시장 확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6자회담 당사국이 참여하는 다자협력사업은 동북아 안보리스크 감소에 기여할 것이다. ②분단 이후 남과 북이 체득한 일정 수준의 산업화 경험을 활용, 국제금융기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추진을 통해 북한 내 지역별 불균형을 해소하고 주민 기본권(건강권, 식량권 등) 증진과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중시하는 국가개발계획(NDGs)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연계한 분야별 지표달성 전략에도 부합한다. ③남북간 호혜적 협력사업을 발굴, 남한의 자본·기술의 참여뿐 아니라 유럽국가 및 국제개발 금융기관 등 다양한 자본주체와 북한과의 파트너십을 유도하는 것도 신한반도 체제 구축에 유익이 될 것이다. ④유네스코 유산 공동등재를 비롯한 분야별 사회문화교류는 남북간 이질감 해소에 기여하는 한편, 북한당국에게도 체제이완의 불안요인이 아니라 인민대중으로부터의 신뢰증진과 지지로 귀결될 수 있다.

다만 평화프로세스가 지향하는 신한반도 체제가 남북한 제도, 경제, 사회적 통합까지 수렴한다 하더라도 남아공 사례와 같이 각종 양극화 문제는 국가적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굳이 지배층과 피지배층 관계로 치환하지 않더라도 동서독 간 ‘2등 시민’ 갈등과 같이 남북 주민간 경제적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촉발될 가능성(단기간 통합일수록)이 농후하다. 따라서 남북주민간 경제적 질서의 경계는 일정기간 유지하면서 경제공동체 형성은 소프트랜딩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의 변화와 함께, 평화프로세스 하 통일기반을 성숙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물음-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통일을 추구하는가? △남북, 상이한 두 체제의 평화공존은 국가관계를 고착화하거나 제도적 통합(임시헌법 등)을 저해할 우려는 없는가? △남북주민들은 통일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있는가? △평화협정 체결은 남북주민의 평화와 인권,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남북상생을 위한 신한반도 체제(평화협력공동체·경제협력공동체)가 구축되면 물리적, 화학적 통일이 필요한가?- 에 대해 정책적 숙고와 대중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표면적으로 통일이 분단의 제도적 종식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혹여 또 다른 민족 분쟁의 씨앗이 된다면 평화프로세스는 통일과 거리두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6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고안해낸 통일국민협약안(‘21.6.26 채택)에는 16개의 한반도 미래상이 담겨 있다. 이를 대내외 환경변화에 맞게 지속 수정·보완하면서 다음 정부의 평화프로세스와 탄력적으로 연계하려는 노력을 통해 분단시민 스스로의 평화 효능감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한기호/ 전 통일부 서기관(통일학 박사),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

한기호  soma49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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