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절부터 남북한간 체제 경쟁은 곧 국력 경쟁이었다. 특히 경제력과 군사력의 지표로 평가하는 남북한의 국력 비교는 상대방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었다. 안보위협의 수준이 높은 한반도에서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에 대한 전쟁수행능력의 우위 달성이 단순한 경쟁을 넘어 체제의 사활이 걸린 필사적인 국가 과제로 인식되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북한간에 군비경쟁을 유발하게 된다. 한국군의 경우는 항상 “우세한 북한 군사력에 비해 열세인 우리 군사력을 증강시켜 대비한다”는 북한 ‘따라잡기식 전력증강’이 국방정책의 핵심 모멘텀(momentum)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1년에 발표된 신국방정책은 북한에 비해 양적으로 열세인 우리의 군사력을 양적으로 팽창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 국방정책의 비효율성을 반성하며 ‘한국적 자주방위력’을 촉구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시민사회 역시 리영희 선생의 새로운 ‘남북군사력 비교연구’에서 영향을 받아 ‘북한군 우위론’에 대한 허구성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이런 안팎의 비판 때문이었는지 북한군의 재래식 전력의 양적 우위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관점을 수정하여 민주화와 통일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방의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소위 ‘군비통제’에 대한 연구도 다수 이루어진 바 있다.

특히 1990년대는 북한에게 군의 현대화에 있어 ‘완전히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경제난으로 항공기와 함정 구매 실적이 전무하고, 기존 군사력 역시 노후화와 관리부실, 군기 이완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 북한군에 무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북한 제2경제권 역시 결정적 타격을 입어, 이 시기에 북한군은 재래식 전력 증강에서도 거의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한국군은 한국형전투기사업(KFP), 한국형 구축함사업(KDX), 잠수함 도입과 같은 핵심 공격무기 도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진데다가, 금강․백두 정찰기, 미스트랄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C-130 등 대형수송기, 전자전장비, 지휘통제시스템, 한국형전차(K-1) 및 그 개량형(K1A1), 한국형장갑차(K-200), 한국형 장갑차(K-55), 한국형 자주포(K-9)의 양산이 이루어졌다. 각종 현대식 무기로 북한을 압도하게 되자, 이제 남북한 군사력 균형의 추는 한국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적어도 1990년대 말이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북한을 따라잡는 것은 물론, 완전히 역전하게 된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 장면

1990년대 ‘기회의 창’ 이론, 왜 2000년대에도 안통할까?
특히 1990년대에 안보상황을 전망하는 데는 당시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이 말한 ‘기회의 창’ 이론이다. 여기에 따르면 북한군은 1990년대 말, 남한에 대한 재래식 전력의 비교우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데, 대남 군사적 우위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90년대 말 이전에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도발을 할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 그래서 그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도발의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994년의 서울 불바다 협박으로 인한 안보위기, 1996년 판문점 무장병력 난입과 그 해 강릉 북한 잠수함 침투, 1999년의 동해항 북한 잠수정 인양 등 유달리 90년대형 안보위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000년대가 되어서도 북한에 대한 우리의 재래식 군사적 우위와 억지력이 확보되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국방부를 비롯한 당국의 설명은 북한이 우세한 군사력 격차는 더 벌어진 것으로 설명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인 2004년에 대통령 지시로 남북군사력 비교가 한국 국방연구원(KIDA) 주관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는 지상군은 북한군의 80% 수준, 해군은 대등, 공군은 106% 정도로 우세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런데 전체 군사력을 합해서 평가하면 아직도 열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정권에서는 아예 북한군과 격차가 더 벌어져 이제는 심각한 열세라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얼마 전 조보근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국회에서 “남북한이 일대일로 싸우면 우리가 진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2000년대 와서도 한국군은 차기전투기 1차 사업(FX-1)과 2차 사업으로 60대의 고성능 전투기를 확보했고, 장보고급 중대형 잠수함을 도입했으며, 세계에서 5개 나라밖에 갖고 있지 못한 이지스 구축함도 실전에 배치하였다. 최첨단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 도입과 군사 인공위성을 확보하였고, 다련장로켓(MLRS)을 배치하였으며, 차기전차(K-2) 개발도 완료하였다. 경항공모함으로 운용될 수 있는 대형수송함과 한국형 헬기(KHP) 사업도 성공하였다. 그런데 그 날 조 본부장의 국회에서 발언의 앞뒤 문맥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런 군사력 증강의 보람도 전혀 없이 북한군에 우리는 더 취약한 것으로 설명이 된다.

김정은 시대 개막과 함께 쏟아진 ‘북한 군사력 우위론’
김정은 시대의 개막과 함께 북한군의 전략과 전술은 핵무기와 미사일 중심으로 새로운 군사교리를 정착시키고 있다. 북한은 장거리 탄도미사일, 선군호·폭풍호 등 신형 전차, KN-06 미사일,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실전배치했다. 국민대 정창현 교수는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결과 미국의 양적 우세, 군사기술적 우세가 이제는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핵에는 핵으로, 정밀타격에는 전자전으로 맞서는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한다. 이와 더불어 작년 3월에 미사일지도국을 전략로켓군사령부(사령관 김락겸 중장)로 확대 개편한 것이 눈에 띈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미사일 중심으로 군 전략을 새로 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배치와 관련해서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강화에 대응해 휴전선 인근에 군 역량을 전진배치하고, 공격형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서해 5도와 대치하는 4군단의 전력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명히 김정은 시대에 와서 북한군은 서방 세계의 전략을 학습한 듯 제법 세련된 정치군사 행동을 보여준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외에도 ‘1호 전투근무태세’, ‘전략 로켓군’, ‘우리식 전면전 준비’ 등 무언가 현대화된 군사전략과 시스템을 형형색색으로 선보이면서 군사강국임을 뽐내는 것 같다. 언제 개발했는지도 모르는 신형 무기와 신형 군사력도 신출귀몰하게 나타난다. 우리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 성능 부실 논란을 빚은 중어뢰를 북한이 무슨 방법으로 개발해서 천안함을 격침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인지, 그 과정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게다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신형 전차와 장갑차가 이미 수백 대 실전에 배치되었다는데, 이건 우리도 엄두를 못 내는 괄목할 만한 변화다. 또한 일순간에 2만 명의 특수부대를 해상을 통해 수도권에 침투시킨다는 공기부양정을 서해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여 배치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우리도 돈이 없어 2만여 명밖에 보유하지 못한 특수부대를 북한은 20만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각종 위성항법장치(GPS) 교란과 무인공격기로 남한을 정밀 타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평택까지 타격하는 신형 장사정 무기는 또 어떠한가. 수천 명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 수준과 최대 규모의 사이버 심리전, 해커부대는 미국도 위협이라고 말하고 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갑자기 이전에 없었던 군국주의 국가가 새로 생겨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군사비는 남한이 34배인데 군사력은 북한에 뒤진다?
모두가 김정은 시대 출범을 전후하여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난 군사력이다. 지난해 3월에 ‘우리민족끼리’에서 공개한 “3일 전쟁 계획”, 그리고 그 직후 김정은이 서해 군부대 시찰에서 “우리식 전면전 준비가 끝났다”고 선언한 것 등 북한은 새로운 전쟁전략을 완성했다고 스스로 공언하고 있다. 그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는 6·25 전쟁 당시 대전에서 인민군이 지체했다가 부산을 점령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여 이제는 한반도 전역에서 한꺼번에 전쟁을 한다는 ‘동시전장화 전략’이다. 둘째 이 역시 과거 전쟁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속전속결 전략’이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판갈이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 구현을 위해 북한은 휴전선 인근에 밀집한 전방제대뿐만 아니라 남한 후방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전력, 특수부대 침투 등 제반 수단까지 구비하였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전방부대 개편이다. 과거 후방에 있던 기계화부대와 경보병부대를 전방 제대로 통합하여 제1제대와 제2제대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 무렵 우리 국방부는 지난 20년 가까이 간직해왔던 하나의 믿음을 버렸다. 북한이 경제난으로 대규모 전면전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소규모 국지전으로 도발한다는 믿음이다. 다시 “북한은 대규모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것이 최대 안보위협”이라고 북한 군사력에 대한 평가를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 핵과 미사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을 다시 일거에 압도적인 수준으로 증강할 수 있었는가, 라는 의문이다. 과연 이것이 합리적으로 가능한가, 어쩌면 우리는 또다시 북한 군사력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점이다. 특히 해외로부터의 무기도입이 불가능한 북한이 자체 기술과 경제력만으로 이러한 군사력 증강을 달성하였다는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방 당국이나 군사전문가들은 일체 함구하고 있다는 점도 이상하다. 단적으로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 잠수함의 제원과 성능도 알려진 것이 없다. 또한 그러한 수중 공격이 가능한 북한군의 새로운 교리나 전술에 대해서도 이제껏 군 당국은 물론 그 어떤 단체도 세미나 한번 개최한 적이 없다. 무언가 위력적인 국가가 우리의 상상력을 앞지르는 군사전술과 무기체계를 확보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접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북한군에 대해서는 아직도 우리가 신화와 같은 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포기하는 이상한 국면, 즉 ‘인식의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상황이다. 우리 국방부 역시 상당히 모순된 진술을 되풀이 하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 군사비는 1조원”이라고 밝혀 우리가 북한의 3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고 시인했다. 남북한 체제의 차이를 고려한다 하여도 그런데 군사비 투입의 결과는 거꾸로 북한군이 더 탁월하다. 거의 강대국 수준에서나 가능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강화라는 거꾸로 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투입과 산출이 일치하지 않는 이 주장에 대해 비판 없이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판단을 유보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군사력 비교와 실상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가 이러한 비판적 접근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이 우리 안보의 가장 우려되는 점 중 하나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김종대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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